Hyunjoo Byeon
2020.05.03
Essay
2020 디지털 시대의 예술의 순환

글. 변현주
이미지. 에드 루샤/가고시안 온라인 뷰잉룸

20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선구자적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은 실체를 직접 보지 못한 작품을 전시에 포함한 적이 없다고 한다.¹ 전통적 매체를 사용한 예술 작품의 물리적 현존성이 예술의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보면, 제만의 큐레토리얼 원칙과 큐레이터로서의 성실함은 대단하면서도 당연한 듯 여겨진다. 하지만 새로운 10년이 시작된 2020년을 맞이한 오늘날, 우리는 그의 원칙이 더는 적용될 수 없는 환경에서 예술을 경험하고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는 관객에게 온라인 뷰잉룸(viewing room)이나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할 법한 예술 작품의 이미지를 제공하고, 큐레이터는 예술가에게 이메일로 받은 링크를 통해 작품을 보고 전시를 기획하고, 갤러리스트는 컬렉터에게 아트페어에서 선보일 작품 리스트를 온라인 브로슈어로 배포한다. 이 글은 예술 작품의 아우라(aura)²를 과거와 다른 차원으로 경험하는 시대에 예술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고 고찰한다. 나아가 디지털 시대의 예술 플랫폼이 예술을 어떻게 재현해야 할지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비전통적 매체의 작품 유통

비전통적 매체의 작품 유통 회화나 조각, 설치 작업 등 전통 매체를 사용한 예술 작품을 전시할 때 작품에 따라 취급 매뉴얼이 다르지만, 대체로는 작품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기록한 후 손상이 없도록 포장재로 포장하여 크레이트에 넣어 운송하고 보관한다. 그리고 예술가가 요청한 매뉴얼에 따라 작품을 설치한다. 작품 판매가 이뤄진 경우는 컬렉터가 작품가를 지불하면 작품과 함께 작가나 유족 혹은 재단의 서명이 포함된 작품 보증서가 전달되며 판매가 완료된다.
그렇지만 예술 작품이 비물질적이라면 전시 이후 작품은 어떻게 유통되고 판매될까? 물리적 오브제가 없어도 작품을 소유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필자가 갤러리에서 일하며 어느 정도 풀렸는데 경험 중 가장 혁신적인 예술 작품의 유통은 독일 작가 티노 세갈(Tino Sehgal)의 방식이었다.
티노 세갈은 목소리, 언어, 움직임 등 비물질적 매체를 사용해 일시적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의 작업은 ‘구축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다. 관객은 작가가 정한 규칙에 따라 수행하는 퍼포머와 상호작용하고 그가 구축한 상황을 경험한다. 이처럼 비물질적이고 일시적인 세갈의 작품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소속 갤러리인 베를린의 에스더 쉬퍼(Esther Schipper)에서 일하기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이 판매되는 방식에 관해서는 항상 의문을 지니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브제가 없는 작품이라 해도 ‘상황’이 수행되는 순서나 퍼포머를 위한 매뉴얼이 적힌 서류, 또는 작가의 서명이 있는 작품 보증서가 있으리라 추측했다.
하지만 작품은 완전하게 비물질적이었다. 갤러리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작가의 의도대로 작품 제목, 제작 연도, 가격을 제외한 그 어떤 정보도 없고, ‘상황’이 만들어진 현장을 기록한 사진이나 비디오, 전시 도록도 없었다. 티노 세갈의 작품을 직접 판매해 본 동료에 따르면심지어 작품의 유통에 관련된 작품 판매 계약서, 설명서나 매뉴얼, 영수증 등의 서류도 만들지 않고 모든 것은 마치 유통 그 자체도 하나의 퍼포먼스나 예술적 제스처처럼 구두로 전달되고 진행된다. 이처럼 세갈의 작품은 비물질적으로 미술관이나 컬렉터에게 판매되고, 작품 유통에 있어 완벽하게 혁신적인 방식을 제시하며 예술 작품을 지각하고 경험하는 방법을 전환한다.
티노 세갈이 작품을 순환시키는 방식의 비물질화의 한 극단을 보여 준다면, 대부분의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작품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비물질성을 물리적 공간에서 재현시킬 디테일한 매뉴얼을 제시하며 작품을 유통한다. 그 예로, 필자가 국제갤러리에서 근무할 때 담당했던 박찬경 작가의 3채널 비디오 작품 <시민의 숲>(2016)이 국내외 미술관에 소장되었고, 작품은 미술관에 USB나 외장하드로 전달되었다. 일견 전통적 매체의 예술 작품이 운송되거나 판매될 때와 달리 단순하게 보일 수 있지만, 디지털 매체의 작품 유통에는 디지털로 처리된 많은 양의 정보가 전달된다. 여기에는 국영문으로 작성된 작가 프로필, 작품 소개, 관련 정보와 작품의 스틸컷 이미지, 전시용으로 사용될 비디오 파일, 오리지널 비디오 파일 이외에도 디지털 작품이 물리적 공간에 설치되고 상영될 때 반드시 지켜져야 할 매뉴얼이 제공된다. 파일이 플레이 될 때 사용해야 하는 기기 정보와 같은 테크니컬한 부분부터 작품을 영사할 때 요구되는 공간의 크기, 벽의 색깔과 바닥에 설치해야 할 카펫 정보 등 작가가 재현하고자 하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디테일한 정보가 작품의 소장자에게 전달된다. 또 다른 사례로, 에스더 쉬퍼에서 선보이는 독일 작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작업이 있다. 그녀의 작업은 종종 여러 채널의 비디오를 3차원적 설치로 재현하기 때문에 더욱 구체적인 매뉴얼 작성이 필요하고, 갤러리 프로덕션 팀도 작가의 스튜디오와 협업해 다양한 렌더링 작업을 하며 요구 항목을 정리한다. 이는 설치 작업의 재료와 조립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디지털 매체 작품의 유통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품의 매체가 비전통적이라 해도 티노 세갈처럼 작품 순환의 모든 과정을 전환한 사례 이외에는 기존 갤러리에서 예술작품이유통될 때 매체를 보관하고 운송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전통적인 유통의 기준을 따르는 듯 보인다. 디지털 매체의 작품의 유통 역시 전통적이라면, 갤러리나 아트페어 같은 전통적인 물리적 공간이 아닌 디지털 플랫폼에서 작품은 과연 어떻게 순환되는가? 기존의 방식을 전환하는 혁신이 있을까?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예술 작품 유통

2020년 3월 19일부터 21일로 예정되었던 아트바젤 홍콩이 취소되었다. 미술 작품 거래 규모가 1조 원³에 이르는 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아트페어 행사조차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의 위협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트바젤은 매년 홍콩 컨벤션 전시 센터에서 열렸던 페어를 대신해 3월 18일부터 25일까지 온라인 뷰잉룸을 오픈할 예정이라 발표했다.
이러한 발표는 최근 아트마켓에서 주목받는 온라인 뷰잉룸의 인기를 고려했을 때 놀라운 뉴스는 아니다. 2017년 1월, 뉴욕과 런던, 파리, 홍콩에 지점을 둔 메가 갤러리인 데이빗 즈위너(David Zwirner)가 처음으로 갤러리 웹사이트에 뷰잉룸을 오픈하고 작품 정보와 작품가를 공개적으로 명시하여 작품 판매를 시작했다. 크리스티(Christie’s)나 소더비(Sotheby’s) 같은 옥션 하우스에서 공격적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도입하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디지털 사용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를 유치하기 위한 시도로 시작되었다. 갤러리 온라인 세일즈 디렉터 엘레나 소보레바(Elena Soboleva)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온라인으로 작품 문의를 하는 이들의 52%가 새로운 고객이고, 고가의 작품들이 갤러리 지점이 없는 지역의 컬렉터에게 판매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데이빗 즈위너 갤러리는 2019년부터 아트바젤 기간에 온라인에서만 판매하는 작품이 있는 ‘바젤 온라인(Basel Online)’을 열었고, 웹사이트에는 팟캐스트 등 여러 섹션을 선보이며 디지털 플랫폼에서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선구적으로 활용한다.

ED RUSCHA, Cosmo, Selma, Vine, 2000, Acrylic on canvas, 70 × 138 inches(177.8 × 350.5 cm), In Gagosian's Frieze Los Angeles 2020 Online Viewing Room, Artwork © Ed Ruscha. Courtesy Gagosian.

데이빗 즈위너의 온라인 뷰잉룸은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반면에 또 다른 메가 갤러리인 가고시안(Gagosian)의 온라인 뷰잉룸은 아트페어가 열리는 기간에만 팝업 형식으로 열린다. 지난 2018년 6월 아트바젤을 앞두고 등장한 가고시안 갤러리의 첫 온라인 뷰잉룸은 예술작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형식이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가고시안은 아트페어VIP 프리뷰 하루 전부터 페어 종료후 3일까지 총 10일 동안 작가 열 명의 선정된 작품을 온라인 뷰잉룸에서 판매했다. 뷰잉룸에 입장해 각 작품의 이미지를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볼 수 있게 하고, 작품에 관한 정보를 영어와 중국어로 안내했다. 또한 ‘라이브 어시스턴스(Live Assistance)’를 통해 24시간 갤러리의 세일즈 담당과 연결될 수 있게 했고, (마치 TV 홈쇼핑을 연상시키듯) 갤러리 디렉터가 작품의 경제적, 미학적 가치를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비디오로 제공했다. 세심하면서도 신중하게 구성한 첫 온라인 뷰잉룸에서 갤러리는 2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후 프리즈 런던, 프리즈 LA, 아트바젤 홍콩 등의 아트페어 기간에도 온라인 뷰잉룸을 오픈했다.

Gagosian's Frieze Los Angeles 2020 Online Viewing Room, Courtesy Gagosian.

데이빗 즈위너와 가고시안의 온라인 뷰잉룸은 전통적인 물리적 공간을 넘어 새로운 예술작품 유통 플랫폼으로서 갤러리로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여러 측면에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작품가와 정보의 투명화에 기여했다. 하지만 기존의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에서 소비자가 바로 결제하고 구매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갤러리의 온라인 뷰잉룸은 사이트의 ‘문의(inquire)’ 버튼을 눌러 구매 문의를 해야 하거나 ‘라이브 어시스턴스’를 통해 결제 시스템이 아닌 세일즈 담당자에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전통적 판매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다시 말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 간의 교류와 지원이 필요한 일종의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운영된다.
한편 국내의 경우, 온라인 플랫폼을 작품 유통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아직 찾기 힘들다. 대형 갤러리의 판매 방식은 여전히 보수적이고,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판화나 작품의 고화질 프린트 작업이다. 지난 2월에 열린 2020 화랑미술제에 출품된 일부 작품이 네이버 쇼핑의 아트윈도에서 판매되고 있으나 작품의 프레젠테이션 방식은 해외 온라인 뷰잉룸 사례보다 온라인만이 지닌 장점을 크게 부각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앞선 사례 외에도 수많은 온라인 미술관, 온라인 예술 플랫폼, 독립 미디어 등을 통해 예술작품–혹은 예술작품의 이미지–이 순환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기존 주류 미술 제도에서의 비전통적 매체 작품의 유통 및 디지털 플랫폼 활용 사례에 초점을 맞춰 원작을 대면해 작품의 아우라를 느끼기보다 이미지로 작품을 지각하는 게 보편적인 것이 된 디지털 시대에서의 예술 순환 방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사례를 통해 새로운 매체와 플랫폼이 부상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존 제도화의 형식에 흡수되거나 그에 맞춰 조율되어 유통됨을 확인할수 있었다. 물질성이 없는 비전통적 매체를 사용한 작품은 온라인 링크를 통해서도 순환될 수도 있지만, 제도 내의 일반적 기준에 따라전시되거나 유통된다. 온라인 뷰잉룸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극적으로 높였으나 작품이 매매될 때는 전통적 교류의 방식을 적용하는 하이브리드적 성격을 띤다.
그렇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술에서의 디지털 테크놀로지 활용은 여전히 큰 잠재성을 지닌다. 과거 그 어떤 매체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접근성과 투명성이 바로 그것이다. (몇몇 공산국가를 제외하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웹사이트 주소만 있으면 언제든 작품에 접근할 수 있고, 보수적으로 여겨지는 예술작품의 판매에 있어서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누구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작품을 선보일 수 있고, 기존 미술 제도의 주변부에서도 충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디지털 플랫폼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예술을 재현하고, 기존의 제도화 방식이 진화시킬 수 있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큐레이터 사이먼 샤이크(Simon Sheikh)는 우리가 원한다면 또 다른 미술계가 가능하고, 다른 상상 및 다르게 보는 방법을 제시해 세상을 바꿀 수 있게 관여할수 있다고 했다. 예술 작품을 실제로 제도화의 새로운 방식, 다른 세상을 생산하며 투사하는 새로운 방식이자 새로운 자기 변형을 위한가능성으로 보면서 말이다. 물론 기대한 만큼 빠르게 변화하지도 않고, 때로는 그러한 시도가 무력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 없이, 자유롭게 상상하는 힘과 이를 실천하려는 시도만이 우리가 예술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변현주는 큐레토리얼 실천가로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아트북을 출판한다. 베를린의 에스더 쉬퍼 갤러리, 서울의 국제갤러리와 아트선재센터 등에서 일하며 여러 전시를 조직 및 기획했고, 독립 큐레이터로서 런던 로열 아카데미와 이니바, 서울 브레인팩토리, 대안공간 루프 등에서 열린 전시와 프로젝트를 큐레이팅한 바 있다. 『큐레이팅이란 무엇인가』(현실문화, 2013)와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 큐레이팅의 문화, 문화의 큐레이팅』(더플로어플랜, 2019)을 번역했고, 『Curating Research』(Open Editions/De Appel, 2015)에 공동 저자로 참여하는 등 동시대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계원예술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 대학에서 동시대 미술에 관한 이론 강의를 했다. 2019년, 변현주는 동시대 예술의 제도화 방식을 다각도로 구상하기 위해 디자이너 신덕호, 편집자 이영주, 미술사학자 장보영과 함께 아트북 출판사이자 온라인 플랫폼인 더플로어플랜(http://thefloorplan.net)을 시작했다.

  1. Andrew Renton, “Forms of Practice: Curating in the Academy”, The Exhibitionist, No.4., June 2011.

  2.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그의 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1935)에서 ‘아우라(aura)’를 유일무이한 원작이 지닌 허위적인 신성한 후광이라 설명했다.

  3. 2019년 아트바젤 홍콩의 거래액이며 서울에서 열리는 KIAF는 같은 해 3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4. 이 글은 아트바젤 온라인 뷰잉룸이 오픈되기 전인 2020년 2월에 쓰여졌다.

  5. Gerlis, Melanie. “Online Shows at David Zwirner Gallery – Virtual Selling is the Real Deal.” Financial Times. 7 June 2019. https://www.ft.com/content/8875d2fe-8772-11e9-b861-54ee436f9768. Accessed on 25 February 2020.

  6. Kazakina, Katya. “Gagosian Embraces the Web.” Bloomberg. 13 July 2018.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8-07-13/hidden-room-secret-prices-give-way-as-gagosian-embraces-the-web. Accessed on 25 February 2020.

  7. Sheikh, Simon. “Constitutive Effects: The Techniques of the Curator.” O’Neill, Paul (Ed.). Curating Subjects. Open Editions: Londo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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